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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주의자인 제게 내세가 있는 종교의 역할이란 시사비평



제게 있어 내세 개념을 포함하는 종교.

즉 불교, 힌두교 에서부터 그리스도교에서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이 내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종교의 의의란 "인간이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승의 일은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저승이 존재한다는 인간의 심리가 이승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데에 대해서만 간단히 설명하려 하는데,

인간이란 영악한 생물입니다. 또한 간사한 생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감시나 제약이 없는 한 쉽게 사회적으로 규정된 악을 저지르는 동물입니다.

혹은, 사회적으로 인본적 방향과 반대 되는 악한 행위를 하는것에 대해 도덕적, 혹은 사회계약적 의무가 없어지면 쉽게 악을 저지르는 동물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본래 선하다, 본래 악하다 따위와는 관계 없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본래 생태적으로 다른 종을 도태시키고 자신의 종을 남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본래 논리적으로 타당한 상생을 하도록 만들어진 생물이 아닌, 제로섬을 하도록 만들어진 생물이란 거죠.


수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탄생의 역사보다 유구한 수억년 전부터 존재한 생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철칙은 "종의 번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인간또한 그 약육강식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물에 불과합니다.

이에,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인간 또한 이런 자연의 섭리에 적응하도록 진화해 왔는데, 그 중 외부 자극에 대해 우선적으로 반응하는 어떤 프로그램이 인간에게는 각인 되어 있습니다.

흔히 인문에서는 이것은 "본능"이라고 부르는데, 인간의 "감성" 그리고 "감정"이란것도 이러한 본능적으로 각인된 외부 자극에 대한 일종의 반응 루틴입니다.

헌데, 잘 알다시피 이런 감성, 그리고 감정이라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죠.

즉 루틴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볼때 로지컬하지는 않은것이 인간의 본능적 반응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헌데, 인간은 지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지성을 통해 사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인간의 행동원리에는 이러한 동물적 육감에 의존하는것이 아닌 "합리성"이 요구되게 됩니다.

헌데, 인간이 종으로서 각인된 프로그래밍과 사회적 측면에서의 합리성과는 크나 큰 괴리가 있죠.

이에 인간은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요?


저는 그 첫번째 답이 바로 "종교"라고 봅니다.

인간이 "지각"하지 못하는 두 요소.

자신의 내면에 각인된 생물로서의 본능과, 외부 자연 세계의 이해할수 없는 거대한 자연 법칙.

인간은 지성을 가짐으로서 이것을 이해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그에 대한 아주 기초적이고 초보적이며, 원시적인 대응 방식을 구상해냈고, 곧 종교가 발명된 것이죠.


인간은 종교를 만듬으로서 자신의 심리 속에서 일어나는 비논리적인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 현상과 자연의 힘을 일종의 초자연적인 대상의 행위로 규정함으로 통해,

지각할수 없는 외부 현상에 대해 일종의 규칙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합리적인 관점에서 볼때 맞는 관점인지는 부차하고,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어떤 규칙을 부여함으로서 심리적 안정과 이해도를 높힐수 있었다는 점에서 종교라는것은 인류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첫걸음이라고 말해도 무리 없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이해할수 없는 외부 현상을 초자연적인 존재의 행위라고 보고, 이해할수 없는 내부 심리의 현상 또한 영적인 현상으로 인식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초보적인 규칙성을 찾아내게 된 거죠.

그 대표적인것이 바로 "원죄론"이라고 저는 봅니다.

원죄론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합리적 판단을 통해 발견된 "선"한 행동원리와 자꾸만 반하려는 인간의 심리 현상에 대해, 인간이 본래 영혼에 죄를 초자연적 존재에게 부여받은것을 스스로 내쳤기 때문에 그런것이며, 인간은 이 원죄에 영원히 고통받을수밖에 없다고, 인간이 자꾸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악이라고 할수밖에 없는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하려 하는 이유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이것은 내세론과 연결되어, 인간이 이러한 원죄를 감시가 없다 생각하고 이승에서 저지를 경우, 그 원죄가 모두 기록되어 저승으로 모이게 되고, 저승에서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처벌받게 된다는 루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처벌을 피하며 초자연적 존재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러한 마음속의 악마를 죽이고 선한 삶을 선택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 현상을 러프하게 바꿔 말하면, 저승에서의 처벌이 두렵다면 이승에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내세론이라는것은 사실 내세에 대한 것이 중심이 되는것이 아닌, 현세에서의 삶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이 말입니다.

이것을 통해, 생물적 본능으로 타자를 도태시키고 자아의 이기를 추구하려는 반사회적인 인간의 욕망이 억제되는 순효과를 창출하게 되죠.

인간이 스스로 생물적 본능, 즉 야만적이고 미개한 행위에서 스스로를 탈피시키고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방향으로 발전할수 있는 길을 제공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점에 있어 내세관이 있는 종교의 루틴을 놀라울정도로 비슷합니다. 내세관을 가진 종교들은 모두 인간 본연의 나약함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될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인간이 종교적 관념론에 따라 생물적 본능을 억제하고 사회적 동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종교가 큰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합리적인 사고를 발전시켜 나갔고, 그것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과 근대적 철학이 탄생하게 되죠.

헌데, 인간이라는 생물은 인간이 발전시킨 철학 만큼 변화했을까요?


답은, 생물학적으로 볼때 노 입니다. 인간은 수만년 전에 탄생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는 종에서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구석기시대 원시인과 인간은 생물 종으로 볼때 완벽히 같은 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철학을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그 철학을 새롭게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학습시키지 않는 한 그 개체는 구석기 시대 원시인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것이죠.

또한, 종으로서 여전히 같은 종이기 때문에 같은 심리적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상기에서 종교가 했던 역할인, 영적 충족이 없이는 인간 스스로 만든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불안정한 생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영적 충족은 꾸준히 이루워 지면서, 인간이 영적으로 풍요로워 짐에 발맞춰 인간은 그 여유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발전시켜 나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한 인간 종이 죽고 다른 인간 종이 태어나면 그 모든것이 리셋되고, 하나부터 열까지 인류가 쌓아온 지적 토양을 다시 학습시키는 반복 행위를 되풀이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는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인간이 이러한 영적 충족에서 벗어나 진정한 합리적 생물, 로지컬 생물, 과학적 생물로 탈바꿈 하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혁명이죠.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유물론자, 간단히 설명해 영적인 모든것을 미신으로 보고 타파하며, 유물적인 세계관을 구성해 오직 과학과 논리만을 통해 세상을 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아주 보기 좋게 붕괴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아직 인간이라는 생물종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미신을 타파하겠다고 자신있게 외치던 사회주의는, 스스로 교조주의, 교리주의, 원리주의, 맹신주의로 변해갔습니다.

즉, 영적 충족을 만족시킬 대상을 그 사회 스스로 제거해버린 탓에, 사회주의라는 정치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인간은 영적 고독을 충족시키려 했던 겁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주의자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암적 요소입니다. 진보주의자들 또한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공허한 영적 고독을 충족시키려 하죠. 그들은 정치를 종교와 같이 받아들이며, 그들의 감수성을 충족시킬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려할일은, 흔히 "일베충"이라고 불리는 보수층 에게서 또한 이런 교조적 태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정치 체계가 제대로 작동할리 없죠. 일종의 유사 종교로서 변질되어갈 뿐입니다.

그로 인해, 로지컬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사회 요소가 제대로된 역할 수행보단 영적 공허를 매우기 위한 종교적 수단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만 것이죠.

인간에게는 아직 영적 충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영적 충족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이라는 영혼의 고갈을 느낍니다. 흔히 고독을 느끼고, 마음의 한쪽이 허하며, 자꾸 불안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 모든것은 인간이 영적인 면에 의존성을 가진 생물이라는 방증이며, 사회주의는 인간이 영적인 면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몰랐던겁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사회주의는 보지 좋게 붕괴되어 버리죠. 그리고, 러시아는 현재 부랴부랴 정교에게 자국의 영적인 면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러시아는 현재 부적절할 정도의 러시아 정교회의 확장 현상이라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죠.

사회주의 유물론과는 달리 어느정도 종교와의 타협을 했던 민주 사회에서도 또한 합리성과 논리성을 중시하는 탓에 영적인 면을 어떠한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인간은 소위 "콘크리트 숲"이라는 시적 표현으로 표현하는 "공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 발전시킨 과학과 철학, 즉 학문이라는 토대에 자만하여 스스로 합리적일수 있고 논리적일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지만, 기실 불안정한 인간 종이며, 새 세대가 태어나면 그 토양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딜레마에 놓여있는 생물이라는 것이죠.

이 철학적 인간이 완성될때까지의 과정을 보완해줄 대상으로서 종교는 필요하며, 기실 대부분의 인간은 철학적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기서, 종교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인간이, 빨리 질풍노도의 시기를 탈피하고 인류의 역사를 한단계 한단계 발전시킬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종교가 나서서 인간의 영적 공허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이야기이죠.


세속주의자인 제 관점에서 볼때, 종교라는것은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한 면을 보완해주는 기둥이자 주춧돌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종교의 역할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이상의 모든 다른것은 본래 종교의 역할을 벗어나는 원리주의에 지나지 않는 폭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은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같은 타 종교에 비해, 그러한 영적 기둥 역할을 하기에 아주 모자란 종교입니다.

이슬람교는 인간의 영적인 면을 채워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고갈시켜서 더욱 더 신을 찾게 만드는 고약한 루틴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슬림은 누구나와 같이 신이라는 영적 존재에 대한 갈증에 직면해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즉, 무슬림의 종교는 오히려 인간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보단 영적인 갈증을 발생시키는 종교란 이야기죠.

즉, 어떠한 종교 개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이슬람교란 우리 현대 문명에 있어 매우 불필요한 배타 대상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세속론자가 보는 이슬람교를 배타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되겠습니다.



세줄요약 :

영적인 것들이 제 역할을 못하니,

다른것들이 나서서 영적인 역할을 하려 들며, 사람들이 다른것에서 영적인 것을 충족하려 하는것이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병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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